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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네게로 갈 거다

네게로 갈 거다   우리 만나면 펑펑 울어보자 벗은 몸뚱이 겉옷 걸치고 쓸쓸한 거리 새싹 피워 네게로 갈 거다     하얀 고무신   모시 적삼 차려 입고 두루마기 날리며 울긋불긋 단풍 진 하늘길 따라 네게로 갈 거다     푹푹 빠지는 고향길   잊혀지려는 네 이름 석자 기억해 내며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네게로 갈 거다     우리 만나면   지난 세월 아쉬워 말고 남은 시간 절절하게 나의 등 내어 줄 네게로 갈 거다     나무가 비를 맞고 있습니다. 무심히 비를 맞는 듯 하지만 나무는 오랜 시간 비를 기다렸습니다. 먹구름이 비가 되어 그냥 내리는 것이 아니라 구름도 오랜 시간 나무를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나무와 비는 서로를 기다리다 오늘 만나고 있습니다.    몇 일 후면 나는 시카고를 떠나 3주동안 한국을 다녀 옵니다.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그리웠던 친구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윽한 가을풍경이 펼쳐진 큰 창가에 앉아 막 내린 커피 한잔 나누면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려합니다. 페북을 통해 알게 된 작가들도 만나고 늘 그리웠던 전시회도 다녀올 예정입니다. 몇몇 문학단체들의 모임과 특별히 경주에서 3박4일동안 진행되는 세계작가대회에 참석해 좋은 시간을 가지려합니다. 음성도, 모습도, 마음도 알 수 없는 사람들을 처음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 하고 같이 먹고, 자고, 강연도 듣고, 토론도 하며 어울려 사는 훈훈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게 될 겁니다.    모든 것들의 만남은 그리움과 진심이 우선이어야합니다. 그리움은 켜켜이 쌓여진 시간 속에서 서로를 발견하는 기쁨을, 진심은 서로의 마음을 열게 해주는 명징한 단초가 될 것입니다. 찬바람이 머물던 그늘에도 새싹이 돋아 나고, 초록의 잎사귀에 울긋불긋 단풍이 들고, 서로의 마음 속에 하얀 눈이 소리 없이 쌓여갈 것이란 확신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때 비로소 나는 네가 되고 그대는 내기 되어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는 서로를 공유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풍경이 되어 마음 속 깊이 새겨질 것입니다. 나는 전혀 다른 곳에서, 전혀 익숙하지 않은 생활을, 전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게 될 것입니다.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를 함께 공유하고 싶은 순간들이 이제 곧 다가 올 것입니다.     제대로 잘 산다는 게 별것 아닙니다. 나무가 비를 맞듯이 내게 오는 상황을 가감없이 받아 들이며 사는 것입니다. 주변의 모든 것들로부터 빚진 자로 살아 가는 것입니다. 꽃이 피는 것도, 강물이 소리 내 흐르는 것도, 내가 언덕길을 오르는 것도 모두 다 저를 회복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잠들었던 세포를 흔들었던 바람에도, 싹을 키워준 따스한 햇빛에도, 뿌리내리게 해준 대지에도, 나무를 적시는 빗방울마저 모두 빚진 자로 살아야 할 이유가 됩니다.     이 땅의 모든 삶은 서로에게 빚진 삶입니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 울긋불긋 단풍이 지는 것도 빚진 자의 마지막 삶을 고마워하는 표현입니다. 작은 화분에 담긴 동그란 선인장이 자기 머리 위에 작은 선인장을 하나 더 만들고 있습니다. 화분에 옮겨져 이곳에 살게 된 빚진 자의 감사 표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세상은 불행하지도 슬프지도 않고 모든 것들이 선을 이루며 아름답게 변합니다.   이 가을 한국에서 같이 머리를 마주할 친구들과, 또 고국의 둥그런 풍경들과, 못다한 사연들이 너무 그립습니다. 그 곳에서 나는 어떻게 빚진 자의 삶을 표현하고 서로에게 꽃 피울 수 있는 시간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새들도 길을 내고 날아가는 저 하늘 높이 지나온 세월의 무게가 구름처럼 떠 다니다가 비로 촉촉히 뿌려줄 것입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늘 바람과, 햇살과, 별들이 반겨줍니다. 언덕을 오르다 어깨에 메인 짐을 내려 놓고 길가에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봅니다. 계절이 지나면 앙상해질 나무들은 저마다의 색을 만들며 춤추고 있습니다. 한참을 오르다 올려다 본 하늘에 색 바랜 사진 속 친구들이 나를 부릅니다. 때마다 찾아드는 그리움은 잠 못 들었던 많은 날들을 떠 올리게 하지만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바라 볼 날들이 이제 눈 앞에 다가왔습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시간 나무 이야기 보따리 거리 새싹

202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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